이제까지 이런 성명학은 없었다~!
전혀 차원이 다른 성명학을 만나게 된다 !!
神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간 주역 성명학~!!!
우리들의 운명을 설계한 神조차 전율할
정도로 入神의 경지에 다다른 주역 성명학~!!
우리는 누구나 이름 속 운명대로 살아간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름은 곧 운명이다.
6명의 여자와 8번의 결혼, 그리고 8번 이혼한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행로, 쉽게 얘기해서
그의 운명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당뇨병으로 30년간 고통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왼 쪽 발목부분의 상처가 썩어가고 있어 절단
위기에 있고, 손가락도 경직이 진행 중인데다
여기 저기 아픈 곳이 많아 스스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자조섞인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런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당뇨로 인해
생긴 상처는 잘 아물지 않고 치료가 되지 않아
살이 썩어들어가며 통증도 잘 느끼지 못해서
결국 절단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유퉁씨의 본명은 유순이다. 그는 2녀 2남 중
셋째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가 둘,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그의 나이 7살, 코흘리개 철부지시기에 부친이
타계하여 홀어머니가 할머니와 같이 국밥집을
운영하며 4남매를 키워냈다.
학창시절에는 요즘 말하는 일진으로 유명했고
사고를 많이 치고다녀 누나들과 남동생의 속을
어지간히 태웠지만 장남으로서 어머니가 꾸려
나가는 국밥집 일을 많이 거들었다. 이 시기의
경험으로 30대 후반 즈음 국밥집 성공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금정고등학교를 거쳐 울산공업전문대를 졸업,
대구예술대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했다고 한다.
고3이던 18세때 두 살 연상의 스무살 여인을
만나 열아홉에 첫 아들이 태어나면서 첫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요즘 방송에 자주 나오는
고딩 엄빠의 원조인 셈이다.
생활고와 성격차이로 인해 이후 두번의 이별과
재결합 끝에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첫 여인과의
세번의 결혼이 세번의 이혼으로 결말을 맞았다.
대체 어찌 이와 같은 파란만장한 운명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들은 '운명' 이라는 단어를 애써 외면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우에 우리는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있겠는가 말이다.
'운명' 이라는 단어 말고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 와 '운명' 이라는
용어의 연관성에 대해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깊이
생각해볼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운명' 이라는 불가사의에 대해 천착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나같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니 다만
틈 나는대로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여러분들의 운명은 과거 어느 날엔가 여러분들이
심사숙고해 선택하고 결정했던 결과물인 것이다.
운명을 결정 짓는 키 팩터( Key Factor )가 우리의
이름, 사주 그리고 가정환경( DNA, 가정교육 포함 )
이 세 곳에 들어 있다고 이 사이트를 통해 수 천번
강조해 왔다.
왜? 하필 내 형제에게, 내 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이냐며 이러한 상황을 운명이라고 밖에는 더이상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체념하고 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불가사의한 운명이 어디에 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 운명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대체 이 운명이란 괴물은 어디에 박혀
있는지 궁금증이 생길 법도 할 터인데 왜 운명에
대해 한번만 더 생각해 본다거나 혹은 어떤 인과
관계로 인하여 자신의 성공, 실패, 가정, 그리고
건강과 재물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나?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의 그러한 차이가
어떤 이유때문에 발생하는지 왜 그 원인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분명히 운명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우리의 어디에 숨겨져 있는 것인지, 많이도
말고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한 번
찾아보자.
그것을 찾아내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내야
유퉁씨와 같은 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에게 좀 더 편안하고 행복이 넘치는 삶을
지혜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 사이트를 열심히 읽다 보면 여러분도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운명이란 괴물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찾아내도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의
큰 우환을 없앨 수 있게될 것이다.
혹시, 유퉁이라는 이름 속에 어떤 기운이 문제가
되어 사건, 사고, 감옥, 고통, 병, 수술, 사망 등등
여러 가지 일들 중 하나, 혹은 많은 것을 겪을 수
있다는 운명이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유퉁이라는 이름 속에는 반드시 그리 될 운명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아주
적나라하게,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들어있다.
논리와 상식과 의지와 노력, 모든 것들을 종합해
곱씹어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이러한 삶의
희비 쌍곡선은 주역 성명학이 아니면 절대 이해
되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럼 이제 그의 이름 속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주역 성명학 이론을 통해 분석
하면 여러분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허황된 얘기처럼 들리거나, 도무지 믿기지 않고
긴가 민가 하겠지만 전율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러운 영적 체험과 같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래 분석표에서 검정 색은 긍정적이며 잘 풀려나가는 운세가 되고
빨간 색은 고난, 고통, 실패, 손실, 병, 감옥, 단명의 운세를 나타낸다.
유퉁씨 현재의 나이 67세, 위 한글이름 55세 이후 말년에 해당하는
운세가 뭐라 되어있는지 보자. 예명에는 12, 박약박복이 들어있고
본명에는 10, 만사허망이 버티고 앉아있다.
12, 박약박복이 '기승전패'라면 10, 만사허망은 '기승전망'이
된다. 그동안 수도 없이 이 사례들에 대해 설명을 했으니 타이핑하는
내 손가락만 피곤할 지경이다.
이 사이트에 12, 박약박복 운세 때 사기를 당한다거나, 파산하거나,
이혼을 하거나, 수술을 하거나, 실업자가 되었다거나, 감옥에 가거나,
사별을 하거나, 사망을 하는 실제 사례를 셀 수도 없이 올려 놓았다.
10, 만사허망은 박약박복보다 더 한층 위험한 운세가 나온다.
유퉁씨 는 자신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표현했는데 이 수리들의
운세야 말로 불운 백화점이라고 보면 된다. 자신의 이름 속에 이러한
불운 백화점이 들어 앉은 줄도 모르고 모든 일이 잘 풀리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이젠 놀랍지도 않다.
유퉁씨가 고교 졸업후 부산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시기에 우연히
프로야구 관람을 하러갔었는데 관중들이 술먹고 싸우는 광경을 보고
건전하게 열기를 발산할 방안으로 롯데자이언츠 구단 사설 응원단을
만들어 운영하였는데 어느 한 관중이 '너무 뚱뚱해' 놀리는 말을 듣고
'나는 뚱뚱한게 아니라 퉁퉁한거죠' 라고 하면서 이때부터 유퉁이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
유퉁씨가 응원단장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영화감독 이장호씨가
영화출연 해보면 어떻겠냐 제의해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영화로 데뷔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다. 유순이라는
본명에 있는 택풍대과의 위력 덕분이다.
택풍대과는 높은 직위에 올라 금옥대를 허리에 두르듯 신분상승, 성공,
승진, 명예와 재물을 움켜쥐는 운세를 만들어준다. 31세때 1988년에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이후 총 15편의 영화와 9편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3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대학로에서 연극 소극장을 운영할 때 어느 날
예쁘장한 배우지망생이 오디션을 보러왔다. 그런데 유퉁씨가 그녀에게
쌍꺼플 수술한 걸 타박하자 그녀는 그길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말을 전해들은 유퉁씨는 비구니가 된 그녀에게 찾아가 "네가 환속해서
나랑 같이 살면 해탈의 경지를 체험하게 해주겠다" 설득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바로 네 번째 결혼 상대인 혜선 스님이었고 17세 연하에다가 미모가
빼어났는데 유퉁씨 38세 때인 1995년의 일이다.
30대 후반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국밥집을 운영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
그랬었는지 아니면 주변의 다른 연예들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40세 때인
1997년 어느 날 운전기사와 같이 차안에서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되면서
구속이 되었다. 네번째 부인 혜선 스님은 팔자에도 없는 옥바라지 하느라
충격이 제법 컸을 것이다. 결국 그 이듬해 41세때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뉴밀레니엄이라는 새시대를 열어제친 흥분으로 가득한 2000년,
유퉁씨 43세때, 20세 연하의 전은식씨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국밥집이
절정의 폭발적 성장기를 맞는다. 잘 될 때는 하루 매출 1,700만원, 한달
매출이 1억 5천만원이었으니 대박이 났던 셈이다. 서울 양재동 근처에
삼겹살집, 김해삼계곱창집, 창원과 김해에 막창집, 제주도엔 미술관 등
그것도 모자라 뉴질랜드까지 진출하게 된다.
46세때 전은식씨와의 다섯번 째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뉴질랜드서
크게 사기를 당하게 된다. 아무리 잘 나가고 돈을 가마니에 쓸어담는다
해도 이런 이름은 '기승전망'이 된다는 전술한 말을 잊지말길 바란다.
그리하여 허탈한 마음을 안고 그만 삶을 정리하기 위해 몽골로 들어가
살게 되는데 47세때인 2004년 여기서 만난 여인이 29살 연하의 몽골인
낭랑 18세 소녀 바상 자르갈이다. 그녀의 엄마는 45세이니 유퉁씨보다
두 살이나 어리다. 두살이나 어린 장모의 사치가 심해 평소 불화가 많고
그랬지만 예쁜 딸이 태어났었고 결국 6년 만인 2010년 이혼했다.
56세때인 2013년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는데 32살 연하인 24세의
몽골여인 뭉크 자르갈을 만나 7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고 딸 '미미'를 얻게
됐다. 참 대단하다는 감탄사를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신부에게 주는 지참금이 적었던 건지 파혼이 되면서 7번째 이혼을
하게 됐고, 2017년 60세에 또 다시 뭉크 자르갈과 8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60세를 넘긴 유퉁씨가 20대 초반의 한창 성숙한 여인을 만족시키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62세때인 2019년 8번째 부인 뭉크 자르갈은 딸을 데리고 몽골로 들어가서
연락두절이 되었다. 한마디로 잠수를 탄 것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찾아내
몽골에 있는 집과 재산을 넘겨주고 게다가 뭉크 자르갈이 대학을 다니겠다
해서 부인과 딸의 학비및 생활비를 매달 꼬박꼬박 보내줬다고 한다.
그렇게 4년여 기러기 아빠 생활을 이어가던 중인 2023년 몽골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8번째 부인 뭉크 자르갈에게 다른 남친이 생겼고 둘 사이에
아이까지 출산했다는 것이다. 유퉁씨는 뒤통수를 심하게 가격당한 것 처럼
큰 충격을 받았었고 가슴은 배신감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8번재 이혼을
하게 된 사연이 되겠다.
문제는 같이 살고있는 열살 된 딸 '미미'가 엄마의 새 남편에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떡하든 자신이 데려다 키워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데려와서 열심히 이것 저것
피아노, 장구, 노래, 미술 등을 가르치며 재능을 파악해 봤다.
다른 도둑질 다해도 씨도둑질은 못한다더니 유퉁씨의 재능을 빼다 박았을
정도일 만큼 못하는 게 없는데 그 중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최근에 노래 경연대회에 나가는 곳마다 대상을 받아 온다고 하니 앞으로의
기대로 유퉁씨가 미미를 보는 눈에 꿀물이 뚝뚝 떨어진다.
미미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