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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원각사 무료식사 자원봉사

이름박사 백춘황 2012. 12. 8. 23:42

 

 

탑골공원 원각사 자원봉사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국내에 저명하다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성명학을 공부하는 와중에

호구지책으로 직장 생활을 몇 군데 전전하였다. 그 중에는 월급이 박한 무역회사도 있었고, 

또 친구와 같이 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는데 경영 노하우만 쏙 빨아먹고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날 배신한 친구가 천벌을 받았는지 그러고 얼마되지 않아 그 친구의

배우자가 사고로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안타깝지만 세상만사 사필귀정이다.

 

그렇게 적지아니 방황을 할 무렵 우연히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라이온스 클럽에 가입해서 활동해 보기를 권유하였다. 

 

그것이 6년 전, 찬바람이 벌거벗은 마로니에 가지를 훓으며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던 어느

겨울 날의 이야기다. 명동거리에는 지금처럼 구세군이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내며 자선냄비에

온정을 담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라이온스 클럽은 미국에 본부를 둔 봉사활동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나는 멋 모르고 그냥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따라 강남가는 심정으로 휘척휘척

따라 나선 것이 계기가 되어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만 있고 봉사는 없는 줄 알았는데 회원들이 내는 회비의 반은

각막을 잃은 사람에게 시력을 되찾아주는 후원금으로 쓰이고, 각자 클럽마다 자율적으로

봉사의 대상을 정해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클럽은 354 C 지구 내의 "뉴중앙라이온스클럽" 이라는 곳인데 매 달 둘 째 주

일요일마다 종로 탑골공원 뒤 원각사에서 노인들에게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여

예의 쭐래쭐래 따라 나섰다.

 

내가 처음 가서 봉사한 날의 충격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국사 책에서 얼핏 본 원각사는 탑골공원 내에 있는 것이고 조선왕실의 지정사찰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원찰은 일제시대때 없어졌고 우리가 봉사활동을 다니는 원각사는 탑골공원 

돌담을 따라 나있는 좁은 골목길 뒤 편쪽에 있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 사찰로 올라가니 그야말로 옛날식 목욕탕에서 보던 번호표가 붙여진 신발장이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여평의 방에 부처님을 모신 소박하고 초라한 불단이

한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크신 훤훤장부같은 잘 생긴 스님 한 분이 합장을 하며 밝은 미소로

맞아 주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신문이나 잡지에도 여러차례 나오신 주지 '보리스님' 이라고

했다. 

 

18년 전, 스님 47세 때, 우연히 탑골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다 1500원짜리

국밥을 대접해 드리면서 "산 속에서 염불이나 외우고 있을 것이 아니다.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고 생각해 3년여의 준비를 거쳐 여러 독지가의 도움으로 현재의

누추한 원각사를 개원하셨다는 것이다. 

 

 

  

 

입구에 밥을 퍼주는 사람, 반찬을 담아 주는 사람, 고추장을 밥위에 얹어주는 사람, 수저를

쥐어주는 사람을 거쳐 국을 담아 건네면 방안에 세 줄로 놓여진 길쭉한 식탁에 차례로 앉아

노인들이 식사를 하는 것이다.

 

각자의 신발을 까만 비닐 봉지에 넣어 한 손에 쥐고 한 손에 밥그릇을 받으면 국그릇을 받을

손이 모자란다. 그러니 신발을 담은 비닐봉지는 옆구리에 끼고 한 손에 밥, 한 손에 국을 받아
움직여야 한다. 간혹 수족이 불편하신 노인들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재빨리 "할아버지 가서 앉아계셔요, 국은 갖다 드릴께요~!" 하면 장내 정리 담당이

눈치 빠르게 내 말뜻을 알아 듣고 국을 가져다 드리게끔 시스템화 되어있다. 

 

밖을 내다보니 수 많은 노인들께서 탑골공원 뒷담 그림자에  몸을 숨기듯 줄을 서서 배식

준비가 끝나기를 학 처럼 목을 늘이고 계신다. 몇 명이나 되는지 물었더니 매일 저렇게 200명

정도 오셔서 점심을 드신다고 했다. 매일 가마솥 2개 분량의 밥은 도시 누가 하는지 물어보니

설거지를 하는 클럽 선배가 턱으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할머니들을 가르킨다.

 

얼핏 봐도 다들 허리가 60도 이상 꺾어진 할머니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들을 연신

쏘아붙인다. "아, 밥을 왜 남겨~!?" "앉은 자리에 흘린 밥풀떼기는 각자 치워야지~!" 

 

 

 

나는 신입회원이기때문에 설거지를 담당하게 되었다. 설거지를 담당하는 사람만 세 명인데

맨 말석에서 냉면그릇보다 약간 큰 스테인리스 대접에 묻은 밥풀을 씻어내고, 플라스틱으로

국그릇의 찌꺼기를 물로 헹궈 떼어내 옆 사람에게 넘겨주면 세제 거품이 몽실대는 수세미를

잡은 친구가 능란한 솜씨로 닦아내고 초벌 헹굼을 하여 그 옆 친구에게 주면 다시 깨끗한 물로 

마감하고, 장내 정리를 하는 친구가 틈 나는대로 밥 퍼주는 곳에 가져다 놓는다.

 

이렇게 정신없이 한 시간여 설거지에 몰입하다보면 등줄기에 스멀스멀 땀방울이 기어가는

것을 느낄 때쯤 배식이 끝난다. 일부는 내일 배식을 준비해 놓고, 일부는 방바닥을 기증받은 스팀청소기로 깨끗이  닦고, 일부는 밥그릇을 끓는 물에 소독을 하고 그 날의 봉사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보리스님에게 쌀 값을 전달하고 근처의 중국집이나 밥집에 가서 회원들끼리

점심을 먹는다. 모여 앉아 식사를 할 때면 표정들이 전부 행복이 충만하지만 매우 절제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날은 내가 좀 늦게 도착해서 하는 수 없이 국 당번을 하였다.>

 

왜 아니겠는가? 그 할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없는가?

집은 어디일까? 집에 누구와 같이 사는 것일까? 몇 시에 나와서 몇 시에 들어가는 것일까?

여기서 점심을 먹고 또 어디로 그렇게 뿔뿔이 또는 삼삼오오 덩어리가 되어 흩어지는가?

관절에 문제가 있어 계단도 잘 오르지 못하는 저 할아버지는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을까?

 

지난 달에 틀니를 잃어버렸다고 투덜 대던 할아버지는 왜 안오시는 것일까?

식사 1인분을 꼬질꼬질한 비닐봉지에 따로 담아가시던 할아버지는 저녁에 드실려는 건가,

아니면 집에서 거동을 못하시는 할머니의 식사를 챙겨 가시는 것일까?

몇 년동안 단골로 나타나던 분이 갑자기 몇 달동안 뜸하면 그 분은 돌아가신 것이란다.

 

 

     <내가 사랑하는 라이온스 후배 유재혁 회원은 봉사정신이 매우 투철하다. >

 

원각사에 갈 때면 항상 콧 잔등이 시큰해 지는 것은 사업에 큰 실패를 하고 갈 곳을 몰라

헤메이던, 주역성명학을 깨우치기 이전의 암담했던, 뼈속 깊이 사무치도록 아팠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원각사의 주지 보리스님은 지금 65세 이시다. 경기가 좋지 않아 각계의 후원이 줄어들고

있어 스님의 마음은 마냥 초조하고 가뜩이나 건강마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밥 퍼주고 설거지하겠다는 단체는 줄을 서 있지만 실제 필요한 쌀과 반찬 값은 절대적으로

후원에 의존하고 있을 뿐, 정부나 자치단체의 정기적인 지원이 있는 것은 아니니 걱정이다.

 

 

     <저 마다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이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절대 남이 아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독려와 지원이 절실하다.

 

<봉사단체와 식사한 인원이 빼곡이 적힌 달력>

  

 

 이름박사   진명  백춘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