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암이 나오는가? - 15
-틀림없이 나온다!
이름에는 이혼뿐 아니라, 독신으로 사는 기운도 있고, 사건 사고도 있고
자살도 있고, 우리가 무서워하는 암도 있다.
자, 이름 속에 이혼, 사고, 수술, 병, 사망 등등의 기운이 정말, 진짜로 있는가?
암 시리즈 열 다섯 번째, 이름 풀이를 해보자.
이름 속에 수리학적으로 총운(貞格)에 “14, 이산파멸” 이 들어 있으면 대부분
이혼, 불치병, 사고,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
14, 이산파멸 만큼 무서운 수리가 있다.
바로 20, 백사실패 와 22, 중도좌절 이다.
이름의 총 획수에 이게 들어 있으면 잘 나가다가도 대부분 끝이 안 좋다.
그러니까 이름 획수 전체의 합이 20, 22가 나오면 매우 나쁘다.
또 대부분 학교운이 안 따라 주는 경우가 많다.
20, 22가 들어있어도 이름 속에 주역괘가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성명학으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주역성명학으로
풀어보면 우리 모두 다 이름대로 산다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
20, 22수리가 좋은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이 있다면 대부분 매우 치열하게 열심히 살며 종종 큰 부자가 많다.
그러나, 치열하게 산다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행복이라든지, 인생 자체를
즐긴다는 면에 있어서는 거리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재미가 없다.
비록 부자가 많이 배출되는 기운이긴 해도 인생을 살면서 좌절이 많고 말년에
이르러 큰 사고 또는 중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면 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반인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한자의 경우, 옥편의 획수와 성명학에서
사용하는 획수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글에서도 “ㅇ” 을 1획으로 계산하는 오류를 범하는데, “ㅇ” 을 1획으로
계산을 한다면 “ㅈ” 역시 2획으로 계산해야 옳다. 하지만 훈민정음에
“ㅈ” 은 “ㅅ” 에 1획을 더하여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ㅅ” 은 2획이니 “ㅈ” 은 그런 연유로 당연히 3획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글 소리 성명학을 20년 넘게 연구했다는 어느 단체는 “ㅇ” 을 1획으로
계산을 하여 이름을 감정하고 또 작명도 한다. 정말 세종대왕이 벌떡 일어날 일이다.
한글은 한 달만 제대로 연구해도 “ㅇ” 이 2획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러니까 쉽게 말씀 드리자면 우리의 글씨 쓰는 습관에 따라 필기체로
획수를 계산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ㅇ” 을 왜 2획으로 계산해야 하는지는 “이름 속 이혼의 기운 총정리 편” 에
자세히 설명을 해 놓았으니 참조하시기 바란다.
이름 때문에 이혼, 병, 수술, 그리고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 드리겠다.
1965년 1월 30일 ( 46세 )
현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부 차장
43세때 S 결장암 판정 및 수술
홍 헌 표 洪 憲 杓
8 8 7 7 10 16 7
수 리 14 15 15 22 23 26 17 33
수리 뜻 이산고독 군계일학 군계일학 중도좌절 일흥중천 영웅풍파 명망사해 권위충천
연 령 대 1~23세 23~40세 40~55세 55세 이후 1~23세 23~40세 40~55세 55세 이후
주 역 산수몽 간위산 산수몽 산뢰이 택산함 택천쾌 택천쾌 택화혁
연 령 대 1~30세 30~50세 50~55세 55세 이후 1~30세 30~50세 50~55세 55세 이후
오 행 土 O 土 X 水 水 X 火 O 木
과거의 성명학으로는 이 이름에서 암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맨 마지막 수리가 20 또는 22가 오면 그릇이 크고, 부자가 많이 배출되며
매우 치열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큰 병으로 무너진다!
이것이 통계다.
홍헌표 기자의 이름의 초년에 14, 23 수리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어려서 부터 머리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상황판단이 기민하고 대세를 보는 안목이 뛰어나며 순발력이
좋아 임기응변에 능하다.
산수몽은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이다. 안철수 교수의 이름에도 이게 있다.
택산함은 포용력을 뜻하니 매끄럽고 일사불난하게 팀웍을 결집시키는 능력을 갖추었다.
23세 이후에 군계일학이 들어 발군의 실력으로 어디에 있어도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나 이 기운이 중첩되면서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다.
이것이 간위산 이다. 또 한자 이름에 영웅적 보스 기질이 화를 키운다. 영웅풍파 이다.
택천쾌 는 내 앞에있는 장애물을 칼로 베어 쓰러트리고 가는 기운인데 칼을 휘두르다
힘이 딸리면 어찌되는가? 힘이 딸린다는 것은 사주의 기운이 약한 시기를 만났다는
뜻이다. 칼을 휘두르다 힘이 딸리면 자기가 휘두른 칼에 자신이 다치게 마련이다.
즉 상대를 향하던 칼 날이 자신을 향하니 큰 병이 드는 것이다.
홍헌표 기자의 이름 속 암의 기운은 22, 26, 간위산 그리고 택천쾌 때문이다.
이름 속에 이런 기운이 없었으면 최소한 큰 병은 없다. 그런데 택천쾌가 또 한 번
더 나온다. 걱정이다. 빨리 이름을 바꿔야 한다.
아래는 홍헌표 기자의 글이다.
2년4개월 만에 돌아온 직장,
늘 웃고 행복을 말합니다
갑작스러운 혈변(血便), 대장암 3기라 했다
죽음이란 단어가 내 눈앞에 다가왔다
식이요법·명상 투병이 아니라 '건강 지키기'라 생각했다
많이 웃고 즐겁게 산다
홍헌표 기자가 쓰는 '암환자로 행복하게 살기'를 월 1회 연재합니다. 홍 기자는 올해
46세로 사회부, 스포츠부에서 일했습니다. 스포츠부 근무 중 2008년 9월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2년 4개월간 식이요법, 명상 등으로 암을 극복하고 지난달 기자로
복귀했습니다. 홍 기자의 암 극복기가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바랍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제 지갑 안에는 특별한 '증'이 하나 있습니다. 등록번호 010812××××, 유효기간 2008년 9월 6일~2013년 9월 5일. 암 환자임을 보여주는 '중증환자 등록 증명'입니다. 이 증만 있으면 암 관련 진료비 등을 5%만 내도 됩니다. 유효기간이 딱 5년인데, 최초 암 진단 후 5년 이내에 재발·전이가 없으면 암이 완치됐다고 판정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금 제 몸에서는 암세포가 보이지 않습니다.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부터 줄곧 그랬고, 한달 전 검사 때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2년 7개월을 더 '암 환자'로 살아야 합니다. 2년 4개월 만에 복귀한 직장의 동료와 친구들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뻐해 주었습니다. 친척들도 혹시나 잘못 될까 봐 안부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도 저는 여전히 암 환자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다 나은 거야?" "좋아졌지?" "치료는 어느 병원에서 받는데?" 궁금해서, 걱정스러워 하는 말들입니다. 매번 같은 대답을 하다 보니 저도 지치지만, 저를 걱정해주는 마음을 생각하면 그리 짜증 낼 일은 아닙니다.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대장, 정확히는 S결장에 1.4×4.6㎝짜리 암 덩어리가 있었다. 폐와 간에는 전이되지 않았지만 림프절에 조금 번져 있었다. 15㎝를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조금 받았다.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은 멀쩡하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다만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 환자로 보지만, 나는 그런 생각 안 하고 살고 있다"는 말은 빠트리지 않습니다.
사실 저 스스로는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식이요법과 명상, 이것은 '투병'이 아니라 '건강 지키기'라고 생각합니다. 투병이란 단어는 왠지 우울하고 비관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죽음이란 현실과 맞닥뜨릴 때 튀어나오는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재작년에 고(故) 장영희 교수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동안 편히 잠들지 못했습니다. 고인과 특별히 인연은 없었지만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던 '암 투병 동지'라 여겼기에 제게도 똑같은 일이 어느 날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제 몸은 자신감을 가질 만큼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삶보다는 죽음이란 단어를 더 자주 떠올렸던 때였습니다. 1년 전 암으로 선종하신 고(故) 이태석 신부님이 저와 비슷한 시기에 저와 똑같은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제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2008년 9월 8일 병원에서 암 통보를 받았던 날,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혈변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지 사흘 만의 일이었습니다. "전이가 없으니 나을 수 있다"는 의사의 희망적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나절이 흘렀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죽음이란 단어가 내 눈앞에 닥쳐왔음을 실감했습니다. 가족과의 이별을 떠올리게 된 것은 하얗게 밤을 새우고 난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암 수술을 받고 난 뒤 명상과 기도를 통해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러나 몸 한구석에서 작은 통증이 느껴지고 화장실에 자주 가는 일이 생기면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저 자신에게 짜증 내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그럴 즈음 내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12월의 편지'였습니다. "병이 주는 쓸쓸함에 맛 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지요.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엔 담백하고 잔잔한 기쁨과 환희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전보다 더 웃고 다니는 내게 동료들은 무에 그리 좋으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수녀님의 글은 내게 희망이었습니다. 거짓말처럼 그 순간 저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저는 낫게 해달라는 청원 기도보다는 오늘도 저와 제 가족을 편히 잠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합니다. 많이 웃습니다. 밥 안 먹던 둘째 딸이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우면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고, 집 앞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니 몸도 살아났습니다. 매일 스스로를 치유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암과 맞설 수 있는 힘을 나타내는 백혈구와 림프구 수치가 안정권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암투병 하면 고통, 우울,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암과 싸워 이긴 사람들은 희망과 사랑, 행복을 더 자주 말합니다. 삶의 끈을 꼭 붙들기 위한 본능입니다. 회사 동료들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하라"고 격려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눈도 시리고 몸은 무겁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동료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그 한마디에 피로가 절로 풀립니다. 새벽마다 집 앞 성당에 갑니다. 미사 시간 중에 "오늘도 많이 웃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암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홍헌표
인간의 의지, 열정, 패기, 집념 등도 병 앞에서는 무력하다. 한계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름대로 산다. 당신의 의지와 용기?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 이라는 조언을 들으신 분 들은 제발 부탁하는데
절대로 가벼이 여기지 말길 바란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그냥 또 몇 년 동안 잊고
사는 법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강력히 말씀 드린다.
현재 이름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는 증거가 충분하다면, 이름을 빨리 바꿔서
다른 기운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사주는 도로와 같은 것이다. 정해진 길을 간다. 정해진 길을 가다 보면 푹 패인
구역도 있고 자갈 길도 있으며, 꾸불꾸불 굽은 길, 흙 먼지 날리는 신작로, 홍수로
끊긴 다리도 만나고, 고속도로도 만나게 된다.
이런 길을 어떤 차로 갈 것이냐 하는 선택권을 인간에게 부여했다.
그 천부의 선택권, 어떤 차를 타고 갈 결정권을 받았다. 여러분은 어떤 차로 정해진
길을 갈 것인가? 어떠한 어려운 길을 만나더라도 절대로 고장 없이 완주할 수 있는
아주 튼튼한 차를 모두가 원하지 않을까?
운전하고 갈 차를 골라 보시라! 어떤 차가 좋은 지를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가야 할 길이
어떤지는 아시는가? 반드시 정해진 꼭 가야만 할 길이 어떤지 알아야 차를 골라 줄 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사주는 대충 정해진 길이다. 명확하게 정해지진 않았다.
아직 확정된 길은 아니다. 가다가 잘 만하면 약간의 코스 변경도 가능하다. 이게 사주다!
미래는 확실한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신(神)이 필요한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대략적인 아웃 라인만 나와있는 것이 사주라는
통계이다. 사주라는 명리학적 통계가 발전한 이유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나마 해소하기 위해서 이다.
앞 날이 확실하게 정해진 것도 삶의 의미가 희박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인간은 늘 미래가 불안한 법이다.
불안하면 잠이 안 온다. 내일, 모레, 내년, 10년 후, 20년 후가 궁금하고 불안한 것이다.
이 불안감을 해소해 줄 위대한 분이 우리 인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이런 위대한 분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동안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살 것인가?
그래서 이 세상에 신이 없다면 너무나 삭막해 진다.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옥황상제든 마리아님이든 마호메트든 단군님이든 누가 됐든 위대한 전지전능하신
분이 있어야 하게끔 되어 있다.
그 위대하신 분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차를 타고 가든 맘대로 골라서 타고 가라고 하셨다.
그게 이름이다. 자, 이제 여러분들은 어떤 차를 타고 가시겠는가?
대부분은 부모님이 주신 차를 타고 있다. 그 차가 맘에 쏙 들어서 너무나 좋으신 분도
있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있고, 자기가 지금 무슨 차를 운전하며, 어떤 길을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가는데 까지 가고 있는 분도 있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그냥 노력하며 의지대로 산다.
그런데 여기서 나에게 주어진 코스가 어떻게 되는지, 어느 부분에서 코스 변경이나,
코스 디자인이 가능한지, 나에게 허용된 운신의 폭과 내가 타고 갈 차의 성능 등
중요한 정보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결과가 어떨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부모님이 주신 차를 어떻게 내 맘대로 함부로 바꿀 수 있느냐고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아직은 동방예의지국 소리를 듣는다. 정말 기특하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어서 차에다 빗댄 것이지 이름은 신성하다.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다. 옳은 말씀이다.
그래도 인생이 힘들면 바꿔라! 그게 부모님에 대한 진정한 효도이다.
이름 바꿔서 좋은 기운으로 성공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살아계시는
동안 당신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생일대 최고의 효도다. 내 말이 틀렸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실제로 시범을 보여 주셨다. 하는 짓이 하도 답답하니까 직접 이름을
바꾸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성경에 “큰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브람’을 '열국의 아비'
라는 의미를 가진 ‘아브라함’으로 바꿔서 큰 소명을 주고” 그 이름대로 거듭나니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었다. 그 뿐인가? 그의 부인 ‘사래’를 '열국의 어미'라는 뜻의 ‘사라’로 바꿔
남편과 똑 같은 큰 소명을 주셨다. 그 외에도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셨다.
오직 답답하면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이름을 바꿔 줬겠는가? 그 외에도 많다.
예수님께서도 제자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더하였다. 이를테면 호, 즉 예명이다.
베드로가 무슨 뜻인가? 우리 말로 '반석(磐石)'이란 뜻이다. 그 이름대로 오늘날의 기독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엄청난 소명을 이루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거듭 난다는 얘기이고 다른 소명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설계가 달라지고 인생의 목표가 달라진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목사님들은 성명학이라고 하면 아주 큰 사탄을 만나듯, 학질 걸린 듯
덜덜 떠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성경에 대한 믿음이 약하단 말인가!
큰 일이다.
이름은 종교와 무관하다. 한자 이름은 유교와 관련이 매우 깊다. 특히 한글 이름은
주역이 그 뿌리를 이루고 있다. 한자도 주역의 음양오행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성명학을 터부시 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우리나라의 이름 체계를 써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 살면서 이름을 이스라엘 식으로 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무엇이든 한번만 더 생각해 보면 혜안이 얻어지는 법이다.
나는, 최소한 성명학적 통계로 이런 아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운명을 이겨내려는 부질 없는 노력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할 것이 아니라 운명의 틀을
과감하게 바꾸는 발상을 하는 것이 훨씬 시간과 열정을 저축하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자.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는 얘기지만,
일단 안 좋다고 하는 수리와 주역괘는 이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철학원에서 짓는 이름의 결함은 오로지 한자 이름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행여 어쩌다 한글까지 수리적으로 완벽하게 작명이 되었다 한들 주역을
모르면 이 또한 문제가 많은 이름이 될 수 있다.
요즈음 나에게 작명비를 물어보는 손님이 많다.
이름은 뒷전이고 무조건 작명비만 알려 달라고 하신다. 물론 비용도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만 정말 잘 지은 이름은 수 십억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낫다.
사주가 아무리 나빠도 좋은 이름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름 값 몇 십만원 아끼려다
수십억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이 이름이다.
요즈음 강남에 유행하는 고소영 유모차가 옵션 포함해서 200만원쯤 한다는데
그 유모차는 도대체 몇 년 동안 사용하는가? 아이가 정상이라면 2년 미만을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이름은 몇 년을 쓰는가?
우리나라 사람 평균 수명이 90세다. 이제 보통 90년에서 100년을 산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자식들과 손자들이 제사 또는 추도식을 할 때 위패를 놓고 한다.
이름에다 절을 하고 이름에 기도를 한다. 왜 그러는가? 이름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은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 도합 200년을 쓴다.
200년을 쓸 이름이 2년 쓰는 고소영 유모차 값만 못하다니 참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영혼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데 작명비만 물어보고 그냥 전화를 끊는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는데 영혼을 담는 그릇인지는 모른다는 반증이다.
옛 날에도 그랬고, 요즈음 역시 인터넷을 뒤져보면 5만원 10만 원짜리 작명하는 곳이 많다.
그곳이 주역성명학으로 이름을 짓는 곳인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주역을 대입하지 않고 한자 이름만 신경 써서 하는 작명은 나는 1분에 하나씩 짓는다.
1분에 하나씩 짓는 이름이 필요하면 말씀하시라. 한자 수리만 아주 좋게 결점 없이
정확히 1분에 하나씩 지어드릴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이름을 하나 짓는 데는 3~5일 정도 소요된다.
10만원 짜리 이름은 10만원 값어치를 하는 것이고 100만원 짜리 이름은 그 값을 하게
되어 있다. 굳이 경제원리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그것이 주역을 대입한 작명인지 아닌지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같은 주역 성명학이라 할지라도 수준차이는 반드시 있다.
내 이름 속에는 과연, 어떤 수리와 주역괘가 들었을까?
그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운명의 작용을 강요하고 있을까?.
이름박사 진명 백춘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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